책소개
“이곳은 안녕, 그것은 진정한 행군이다. 앞으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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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현실 세계를 분해하고 재창조했던 상징주의의 선구자 랭보.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려는 그의 삶의 성향은 바로 우리가 보게 될 시편들을 통해서 랭보 시 세계에 그대로 투영되어, 정체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떠나는 시인의 방랑의 여정을 확인하게 해 줄 것이다.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 즉 사회제도, 관습, 종교, 의식 등에 대한 저항과 반항, 나아가 파괴적 열정에 사로잡혀 랭보(1854∼1891)는 자기 주변의 폐쇄적이고 억눌린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절대적인 ‘무’를 선택하려고 한다. 이것은 바로 모든 영역, 특히 시에서 기존의 것에 대한 반항과 파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파괴와 재창조
먼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은 그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끌어 줄 무한히 넓은 자연으로 눈 돌리게 했다. 자연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현재의 제약과 구속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소위 ‘원초적 세계’의 형성을 접하고 느낄 수 있다고 랭보는 생각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현재 보고 느끼는 현실의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비록 그곳이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파괴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이고 실존적인 나’와 ‘본질적인 나’, ‘나와 세계’ 사이, ‘나와 삶’ 사이의 분리에서 느끼는 부조리는 바로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존재 양식의 ‘우연성’인 것이다. 이 양자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우연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실에 대한 파괴는-주로 관념적인 파괴-랭보에게 ‘초자아’, 즉 나와 세계의 합일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자기 주위에서 느꼈던 이런 생각은 결국 그의 생 전부, 아니 삶의 목적, 시인으로서의 임무로 변하게 된다. 그는 특히 그의 시 세계에서 새로운 시인상을 정립하며 과감하게 실현을 감행하게 된다.
투시자로서의 시인
랭보에게 진정한 시인이란 먼저 자기 자신을 깨닫고 정진하는 ‘투시자’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세계를 꿰뚫어 보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과 영혼이 서로 통하며 모든 감성을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서 사고가 서로 연결되는 언어, 말하자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언어”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시적 형식과 내용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시 세계의 창조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 이전의 시어, 즉 시는 ‘발화’, ‘과장’ 그리고 ‘운문으로 된 속세의 설교’였을 뿐이며, 단순히 사물의 외적인 모습을 재현해 주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랭보는 바로 이러한 언어의 제약성을 뛰어넘어, 언어에 색과 리듬을 부여하는 식의 ‘공감각(synesthésie)’적인 방법을 통해 사고와 상상력의 비약을 유도하고, 기존 언어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과 외관을 넘어서 상상과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 한 것이다.
200자평
미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현실 세계를 분해하고 재창조했던 상징주의의 선구자 랭보의 시선집이다.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려는 그의 삶의 성향은 수록된 시편들을 통해서 랭보 시 세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정체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떠나는 랭보의 방랑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선집이다.
지은이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1854∼1891)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독특하고 특이한 시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파란만장한 실존적 삶이 그러했고, 또 짧은 문학 생애를 통해 남겨진 시인의 독창적인 시 세계가 그러하다. 이로 인해 랭보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그의 문학 세계보다 그의 삶의 많은 일화와 더불어 반항과 방랑의 부단한 동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랭보는 1854년 북프랑스 샤를빌에서 군인인 아버지 프레데리크 랭보와 시골 출신의 어머니 비탈리 퀴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빈번한 주둔지 이동과 어머니와의 성격 차이로 거의 부재 상태였고, 후에는 완전한 별거 상태에 들어가면서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정을 이끌어 가게 된다. 이로 인해 랭보의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혼자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하는 어머니의 차가운 성격과 기독교적 엄격함에 대한 반항과 저항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의 초기 시에도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후 랭보는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이 시기에 벌써 라틴어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16세가 되던 1870년은 랭보에게 의미 있는 한 해가 된다. 1월에 프랑스어로 된 그의 첫 시 작품인 <고아들의 새해 선물>이 발표되고, 후에 시인의 시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스승이자 친구 관계로 지내게 되는 수사학 교수 이장바르를 만나게 된다. 또한 그해에 당시 파르나스파의 거장이었던 방빌에게 시 세 편을 보내 시인이 되는 꿈을 이루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않는다. 이어 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의 와중에 랭보는 세 번의 가출을 하고, 그때마다 스승인 이장바르의 도움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오곤 한다. 바로 이 시기에 쓴 시들이 시인의 초기 시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1871년은 랭보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 시기를 전후로 랭보는 결정적으로 파르나스 경향의 시 세계를 버리고 그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그는 당시 파리 문학계의 유명 인사였던 베를렌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취한 배>를 가지고 파리로 가 그를 만난다. 이후로 유명한 두 사람 사이의 일화가 펼쳐지게 된다. 막 결혼해 신혼살림을 꾸리고 있었고 랭보보다 10년이나 연상인 베를렌은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은 판이하고 또한 추구하는 문학적 성향도 달라, 결국 다툼 끝에 브뤼셀에서 베를렌이 랭보에게 총을 쏜다. 이로 인해 베를렌은 감옥에 가게 되고 랭보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때 고향에서 쓴 작품이 바로 ≪지옥에서의 한 철≫로, 유일하게 시인 자신이 펴낸 산문 시집이다. 이후 둘 사이는 거의 왕래가 없었고, 랭보는 여전히 특유의 방랑벽으로 또다시 다른 시인과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데, 이때 쓴 시가 바로 그의 사후에 나온 시집 ≪일뤼미나시옹≫이다. 이때 시인의 나이는 25세였다. 이어 그는 문학 세계를 완전히 버리고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유럽 전역은 물론, 중동, 자바 등지를 전전하면서 노동자, 용병, 건축 감독 등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프리카에서 무기 거래를 하며 상인으로 일하다가, 병이 나 프랑스로 돌아와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곧이어 사망한다. 그때 나이는 37세였다.
옮긴이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프랑스 파리-소르본대학(파리 4대학) 프랑스 문학과에서 <랭보의 일뤼미나시옹 시집에 나타난 시적 현대성에 대해>라는 논문으로 프랑스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와 다른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19∼20세기 시문학)과 문화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대해 연구, 강의하고 있으며, 20∼21세기 현대 문화와 매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랭보의 일뤼미나시옹 시집에 나타난 시적 현대성에 대해≫(프랑스, 릴, 셉탕트리옹 출판사, 2000), ≪파괴와 재창조의 랭보 시세계[프랑스 문학의 풍경]≫(도서출판 월인, 2001), ≪근대 프랑스에서의 문화 매체 공간의 역사.문화 공간의 매체화: 살롱, 카페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설화에 관한 매체적 담론]≫(연세대학교 출판부, 200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랭보 작품에 나타난 시적 현존(現存)>, <그리스 신화 이미지를 통해 본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론>, <새벽(Aube)에 나타난 랭보의 “시적 깨어남(desillusion poetique)”>, <랭보 시세계에 나타난 ‘일(travail)’과 ‘시적 창조(creation poetique)’>, <랭보, 신화와 반(反)신화>, <레이몽 끄노-새로운 언어를 찾아서>, <매체를 통해 본 유럽 문화>, <유럽 문학에 나타난 가족 정체성의 문제-18세기 프랑스 가족의 정체성과 청소년기> 외 다수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초기 시들(Poésies)≫(1869∼1871)
고아들의 새해 선물(Les Etrennes des orphelins)
감각(Sensation)
오필리아(Ophélie)
교수형 당한 자들의 무도회(Bal des pendus)
음악에 맞춰서(A la musique)
물에서 태어나는 비너스(Vénus anadyomène)
첫날밤(Première soirée)
소설(Roman)
겨울을 꿈꾸며(Rêvé pour l’hiver)
골짜기에 잠들어 있는 사람(Le Dormeur du val)
카바레 베르에서(Au Cabaret-Vert)
깜찍한 아가씨(La Maline)
나의 방랑(Ma Bohême)
까마귀들(Les Corbeaux)
목신(牧神)의 머리(Tête de faune)
일곱 살의 시인들(Les Poètes de sept ans)
모음들(Voyelles)
별은 장밋빛으로 울었네…(L’Etoile a pleuré rose…)
이 잡는 여인들(Les Chercheuses de poux)
취한 배(Le Bateau ivre)
≪마지막 운문시들(Derniers Vers)≫(1872)
눈물(Larme)
아침의 좋은 생각(Bonne pensée du matin)
영원(L’Eternité)
미셸과 크리스틴(Michel et Christine)
수치(Honte)
기억(Mémoire)
오 계절들이여, 오 성(城)들이여…(O saisons, ô châteaux…)
≪지옥에서의 한 철(Une Saison en enfer)≫(1873)
예전에, 내가 제대로 기억한다면(Jadis, si je me souviens bien…)
지옥의 밤(Nuit de l’enfer)
헛소리 1. 분별없는 처녀-지옥의 남편(DÉLIRES I. VIERGE FOLLE-L’ÉPOUX INFERNAL)
헛소리 2. 언어의 연금술(DÉLIRES II. ALCHIMIE DU VERBE)
이별(Adieu)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1873∼)
대홍수 이후(Après le Déluge)
어린 시절(Enfance)
콩트(Conte)
퍼레이드(Parade)
삶들(Vies)
출발(Départ)
어느 이성(理性)에게(A une Raison)
취기의 아침나절(Matinée d’ivresse)
도시(Ville)
도시들 2(Villes II)
방랑자들(Vagabonds)
도시들 1(Villes I)
새벽(Aube)
평범한 야상곡(Nocturne vulgaire)
바다 풍경(Marine)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in)
바겐세일(Solde)
젊음(Jeunesse)
곶(Promontoire)
무대들(Scènes)
움직임(Mouvement)
민주주의(Démocratie)
정령(Génie)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름날 푸른빛 저녁나절에 나는 오솔길을 가리라,
밀 이삭에 찔린 채, 여린 풀 밟으며.
몽상가인 나는 발밑에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이 내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